7월 11일
한동안 아쉬움만 간직한 채 다음으로만 미루어오던 전시회를 다녀왔다. 어릴 적엔 흔히들 말하는 베레모를 쓴 화가가 되려고 부지런히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던 때도 있었기에 종종 화랑도 찾고 미술전도 가곤 했지만 근래에는 그러지 못한 안타까움이 가득했었다.

이번에는 자의반 타의반이라고나 할까. 文人畵家로 이번 초대전에 출품한 친구 雲香의 초청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전시회에 가면 어릴 적이나 평소 소망했던 꿈들을 많이 투영하게 된다.
나도 그렇다. 내 가슴 한쪽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 접지 못하는 꿈이 자리 잡고 있으니 한 점 한 점을 감상할 때마다 꿈틀거린다. 저 작품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생각은 뭘까 에서부터 작가가 꿈꾸는 상상을 끄집어내려고 온갖 공상을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시작해볼까. 그냥 저질러봐... 그래 몇 년 만 더 있다가 해보지 뭐...로 끝을 맺는다.
수년전 딸애가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가을 문학제인지 동아리 작품 전시회를 하는 축제가 있다기에 아내와 전시장을 찾았다. 딸애는 사진반이라 그곳을 먼저 둘러보고 그리고 미술반의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아이들은 자기작품 앞에서 간단한 배경설명을 곁들여 주기에 대여섯 작품에게 내 감상이며 생각을 얘기했더니 딸애는 옆에서 자꾸만 쿡쿡 찌르며 오버하지 말란다. 그래도 집에 와서는 아내도 딸애도 내 감상과 평이 짱이라나...
7월 12일
내친김에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헬무트 뉴튼의 ‘패션 누드 사진전’을 다녀왔다. 이분의 작품은 잡지를 통해서 몇 번 본적은 있으나 감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딸애가 의상디자인을 하고 있으니 집에 널려있는 게 패션잡지이니 눈요기로 본 것 같다.
그러나 명성만큼이나 나를 감동시키지는 못해 아쉬움이 좀 있다고 할까... 너무 상업적이어서 그런지...
엉덩이를 드러낸 채 모피 코트 위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는 모델의 뒷모습, 두 다리를 벌리고 웃통을 벗은 채 소파에 앉아 지나가는 남성을 도발적인 눈길로 바라보는 여성, 변기에 앉아 팬티를 내린 채 신문을 읽고 있는 아가씨 등 그가 찍은 사진은 흔히 사람들이 숨어서 훔쳐보고 싶은 것을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낸 파격의 도전장이었다.
사람들을 자극하도록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 보는 이를 노려보는 격렬한 시선, 숨겨진 성적인 욕망을 비웃듯 거리낌 없이 드러낸 치부, 관음증을 건드린 충격적 장면 등 뉴튼의 사진은 불편하고 불길하며 불안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누드 사진집을 아주 어려서 접했다. 젊어서부터 외국 나들이가 많았던 나로선 성 개방문화를 일찍 접했다고나 할까. 그곳의 특징 있는 문화상품을 사다주기도 하고 꼭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주기도 한다.
1991년 일본에서 유명한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집 ‘산타페’를 사왔더니 중학생이던 아들놈이 그걸 학교에 들고가서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선생님, 다행히 담임선생님한테 들켜서 혼이 나고 집으로 연락이 온 일이 있었다. 헤어가 완전히 노출된 첫 사진집이었는데 아내가 우리집 분위기와 남편의 이런 개방적인 성격을 이야기하고 넘어갔단다.
그 사진집을 사와서 식구들끼리 함께 보면서 누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법과 미술에서 누드 크로키의 필요성을 잘 이해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SEX MUSEUM 이야기나 사진 같은걸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고 보니 좀 이상스럽게 보일지 모르나 방문하는 여러나라의 문물이나 교양적인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많이 사다 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내나 아이들은 내가 철저히 개방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대단히 보수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들놈은 나보다 더 보수적인 것 같다. 특히 자기 동생의 화장, 복장, 태도, 말씨 같은 것에 참견이 많은걸 보면 그렇다.
때문에 思考나 思想은 주변의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형성되어진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렇다. 사람의 생명만큼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 있겠는가. 세상에 무엇보다도 女體만큼 아름다운 게 있겠는가. 세상에 무엇보다도 미세한 곡선의 연속인 게 女體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기에 생명력을 얹어 표현하니 누드는 실상 성스럽다고 할 수 있다.
나의 누드에에 대한 감상은 아주 오래전, 80년대 중반 한참 책을 부지런히 집필할 때 어느 출판사 편집실에 갔더니 세미누드의 큰 사진이 걸려있었다. 상반신을 노출한 아낙네의 물래 잦는 사진이었는데 그때가 누드 사진을 처음 접한 때이다. 그때 그 느낌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과 살아서 숨 쉬는 듯 한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는데 그 느낌과 감상을 식구들에게 이야기 했었더랬다.
그런데 요즈음,
누드가 왜 그리도 유행인가. 연예인들의 누드열풍이 일반인에게까지 전가돼 `누드 전국시대`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옷을 벗는 연예인들부터 시작해 누드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생활의 한 영역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임신한 부인과 함께 찍은 누드사진을 공개한 한 미술교사의 의미 있는 행위에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진 것에 비추어 보면, 우리사회의 왜곡된 누드열풍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좋은 누드란 인체의 어떤 예술성을 강조하기 위해 벗어야 함에도 오늘날 우리 주변에 불고 있는 이 열풍은 대중의 눈요기와 관능적 시선을 붙잡기 위한 상업적 목적에 지나지 않나 싶어 씁쓸하다.
오랜만에 문화와 함께 숨쉬기 했더니 뿌연 하늘이 파래 보인다. 문화 나들이가 청량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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