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금요일 오후, 우리 벤처센터 입주사 임직원과 운영위원인 몇 분의 교수, 그리고 중소기업청의 담당 팀장 등 관계자와 함께 강화도로 1박 2일 세미나 겸 단합대회를 떠났다.
사실 우리 회사가 입주해 있는 벤처센터는 입주사의 임직원뿐만이 아니라 소장과 운영위원인 교수 모두가 젊다. 적어도 나보다 10여살 아래다. 그래서 직원만 보내고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소장인 신교수가 내가 이 대학에서 강의한 것을 아는데다가 연구 과제를 공동으로 하기로 한 것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참가했다.
사실 지난해 12월 센터에 입주하면서 신교수는 몇 차례 입주사의 단합과 교류 같은걸 할 수 있도록 내가 앞장서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그러나 작지 않은 기업을 운영하다가 망가진 후 재기한답시고 이곳에 둥지를 튼 나로서는 앞장서서 나댄다는 게 여간 스타일이 구기는 게 아닌것 같아서 지금껏 머뭇거리고 있었다.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두어 시간 달려서 도착한곳이 강화도 동막이란 곳이다. 그곳에 내려서 아담하게 잘 지어진 현대식 펜션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아 다섯 명씩 보따리를 들고 들어가니 웬걸 깜둥이 외국인이 한명 있는 게 아닌가. 아까 명단에는 분명히 없었는데...
이 친구를 데려온 회사의 사장쯤으로 보이는 이가 양해를 구한다.
그런데 사장의 나이가 내쯤 되어보여서 좀 안심은 된다. 내가 먼저 이 외국인한테 코믹하게 인사를 했다.
Nice meet you, My name is 현아무개. 실제로 현아무개라고 했다. 그랬더니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찬드라입니다 라고 한국말로 더듬거리면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즉시 내 영어가 신통찮아서 그러냐고 했더니 내가 재밌게 말하려고 그러는 거 같아서 그랬다고 웃는다. 금세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며 사업이야기 등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식당에 모여서 좌석을 잡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기대하면서 어울리려고 온 게 아니므로 한쪽에 앉으려니 신교수가 가운데로 앉으라고 권하기에 또 마지못해 가운데에 앉아 상견례를 하니 맞은편에 내보다 나이가 많은 최교수와 나와 비슷한 종소기업청 팀장이 자리를 했다.
나이도 동병상련인가. 여기 앉은 몇몇이 벌써 오학년이라면서 술이 벌써 몇 순배 돌고 돈다. 나도 벌써 알딸딸하다.
내 술 체질은 참으로 특이하다. 소주 한잔이나 포도주 한잔이나 양주 한잔이나 맥주 한잔이나 좌우지간 술은 한잔만 먹어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도 똑같고 취하는 것도 별반 차이가 없다.
집에서는 어느 것이건 한잔 이상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유는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은 소주 한 병 정도는 먹는다. 그러나 마음먹고 먹으면 제법 많이 먹는다. 소주는 5병정도, 양주도 두어 병은 혼자 먹기도 했다.
그래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술을 못한다고 또 어떤 이는 잘한다는 양극의 평을 듣기도 한다.
술에 대한 내 주장은 이렇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는 어떤 경우이던지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
오늘은 술발이 그런대로 받는다. 오랜만에 술과 회로 포식을 하는데 신교수가 내 귀에다 대고 여기 내 대학 동문이 몇 명 된다면서 일러주기에 한명씩 불러다가 내 옆자리에 앉히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 벌써 내가 압권을 하고 있다. 아까 외국인 찬드라와 같이 온 사장도 내 후배가 된단다. 80학번이라나.
그런데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아예 나하고 같은 전자과 76학번, 그러니까 5년 후배가 된다. 날 모르겠냐고 물었더니 알겠단다. 그 정도 후배라면 내가 조교시절 좀 날렸기 때문에 알만도 하거니와 전자과 동문회에서도 만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대기업의 부장을 하다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서 때려치우고 임시방편으로 기사를 한단다. 게다가 우리 벤처센터의 고문 변리사도 동문이란다. 그래서 동문 모두를 불러모아놓고 일갈을 했다. 난 2회 이상만 차이가 나면 존대는 안하고 반말을 쓰니 기분 나쁘면 말하라고 하니 모두들 절대로 기분이 나쁘지 않단다.
여기서부터 기분이 더더욱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배 칠팔명을 만났는데 대장노릇을 하고 있으니...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좌우에서 되레 걱정하는 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만 내 지금까지 살면서 술로 인해 가족이며 친구며 이웃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지 않는가 말이여...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요즘음의 노래만, 젊은이의 노래만 골라서 신나게 부르고 뛰었다.
자정이 되니 반쯤은 자리를 뜨고 보이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 방에선가 스페셜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다. 나의 체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하는 건가. 여기에도 끼어들었다. 여기서는 그 후배 변리사가 자리를 해서 특허와 관련된 토론도 있었지만 지루하지 않을 만큼 즐기다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첫날의 모든 일과가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 오전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족구를 한다. 모두들 나보다 10여살 많게는 20여살 젊디젊은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난 국가대표급기량(내 주장)으로 시종 경기를 압도했다. 누군가 배구를 하잔다. 배구를 하면서 왼손 또는 오른손으로 자유자재로 서버를 넣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대단하단다. 본래 난 군대에서 배구선수를 지냈으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기본기는 남아 있을 터...
그리고 점심시간 장어를 안주삼아 반주를 먹는데 중소기업청 김팀장이 폭탄주 한번 먹자면서 시작한 게 이쪽저쪽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는 왕성한 체력을 유지하는 나를 위해 수차례의 술 권유로 10여잔 이상을 받아먹었지만 이상하게도 말짱한 게 놀랍다.
옆에 있던 5학년 2반의 김팀장, 5학년 8반의 최교수가 어제부터 권하던 담배를 또 권하면서 대단한 체력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내가 아직도 담배를 피우냐고 했더니 자기는 끊고는 싶은데 잘 안된다고 한다.
참 이 사람들 담배는 안피우면 끊는건데 무슨 학문 연구하듯이 끊으려 하느냐고 핀잔을 주니 이양반들 별소리를 한다.
내용인즉 담배끊는 사람은 독한사람이라 상종하지 못할것이나 이틀동안 함께 지내면서 보니 젊은이와 어울리고 앞장서며 조금도 뒤지지 않는 열정이 부러워 진실한 인생의 친구를 하자고 정중하게 제의를 한다.
얼마 전에 “삶의 열정에는 마침표가 없다”를 읽고 아직까지 청춘임을 깨달았음을 상기한다. 그 속에 있는 수많은 노익장의 열정에 탄복하고 인생을 즐기며 찬미하는 삶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그렇다, 나의 열정은 지금 이 순간도 나보다도 더 앞장서서 내 꿈을 일구어 주고 있을뿐더러 새로운 꿈을 그려보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래서 내 열정의 나이는 삼십대밖에 안되었다. 게다가 오랬만에 신나고 즐거운 나들이로 엔도르핀이 팍팍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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