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까.
한 번씩 세간의 화젯거리로 등장하던 ‘그때 그 사람’의 시절로 잠간 돌아가 본다.
나는 71년 대학에 입학하여 이듬해 소위 10월 유신이 일어나 온통 나라가 벌집 건드린 듯 했고 학교는 내리 휴교하였다.
그러니까 악명 높은 유신시대의 한복판에서 학교를 다닌 셈이다. 다행히 잘나지 못한 덕분에 붙잡혀가는 일은 없었다. 사실 그때는 데모자체가 원천 봉쇄되어 있었으니 천재 같은이나 데모를 했을는지 모르고 아니면 보도통제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 지긋 지긋한 교련수업, 듣기도 싫은 학도호국단...
그때 한창 유행한 젊은이의 문화, 통기타에 맥주,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장발... 치마는 길게, 머리는 짧게 하라고 다그칠 때 난 장발단속에 걸려서 파출소에 붙들려가 짤리기도 했다.
그 시기가 소위 민주주의의 암울한 시기였고 이에 항거하는 저항음악도 많이 유행했다. 이때 금지된 곡들은 ‘아침이슬’ ‘돌아와요 부산항에’ ‘당신은 모르실거야’ ‘긴머리 소녀’ ‘눈이 큰 아이’ ‘왜 불러’ ‘고래사냥’ ‘상록수’ ‘거짓말이야’ 등이 생각난다.
어째든 그런 시대에 나는 젊은 학창을 보냈다.
군대는 일 년을 연기하고 73년 6월에 갔다.
이듬해 서울지하철 개통 때 정기휴가를 나왔다가 요즈음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육영수여사 피살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75년 2월 13일 유신헌법 찬반국민투표가 있었다.
다들 알겠지만 군에서는 중대장이 뻔히 보이는데서 기표를 하는데 나는 당당하게 반대에 투표했다. 그때 중대장이 ROTC 출신으로 대학교 선배였는데 내가 투표하는걸 인상 찌뿌리며 쳐다보더니 ‘너 정말 그럴래’하며 질책한 기억이 남아있다.
또 돌이켜보면 74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도 군인의 신분으로 동아일보를 보란 듯이 구독했다. 그때 나는 내무반장이었고 위병소 위병조장이어서 신문을 자유스럽게 볼 수 있었는데 대대 부관의 절독 경고도 몇 차례 있었지만 나는 개겼다.
훈련병 시절엔 여러 동료들을 데리고 병영을 이탈해서 새벽까지 술에 떡이 되었다가 영창 문 앞에서 돌아온 일도 두고두고 짜릿하다. 옆 중대장에게 한판 붙자고 덤벼들기도 하고 선임하사를 두들겨 패기도 했으니 오죽했으랴.
마지막 소대장은 내가 제대할 때 ‘안볼 수 있어서 고맙다’면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더니만 요즈음 소식 들으니 장군 심사 대상자라고 한다.
하여튼 군에서 수차례의 아슬아슬한 고비가 있었지만 운 좋게도 무사히 국방의무를 마치고 상아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내게도 반항적인 기질이 다분히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튼 70년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암울한 시기다.
나는 ‘그때 그 사람’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치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력에 좋다는 뭣을 국무총리가 꿀꺽했다는 것과 일본의 트로트쯤 되는 엔카(演歌)를 대통령이 듣고 싶다는 것부터 시작되는데 이후 나오는 장면들은 초등학생용 영화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심리가 남의 추한부분을 들춰내서 한바탕 난도질하면 말초신경이 자극되어 희열을 느낄는지는 모르지만 성애의 질펀한 부분을 화두삼아 코믹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연예계 뉴스에 식상하리만큼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영화를 보고 나면 못된 놈들을 두들겨 패줘서 그렇던지 아니면 뿌듯한 해피엔딩 등의 대리만족을 통한 시원함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마음속의 감상이 얼굴에 묻어나오지 않는다. 김빠진 맥주 마신 뒤끝과 같다고나 할까...
모르긴 몰라도 제작자는 그 암울한 시절의 추함을 비웃으며 난도질하고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같은 법정공방도 있고 해서 시대의 반항에 대한 대리만족을 줄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아직 동방예의지국의 배달민족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다행스럽다.
어제 어느 기사에서 보니까 실제로 내가 지적했던 것을 흥행의 기대주로 삼았는데 ‘전혀 아니올시다’란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 던져 넣는다지만 나는 동의 할 수가 없다. 어둡고 비참하며 부조리한 일면을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블랙이란 단어를 쓸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어려운 주제를 익살스럽고 풍자적으로 풀어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를 대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좀 더 멋진 무엇은 없을까. 끝난 후 불이 훤히 켜질 때 옆 사람과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스토리로는 안될까...
이 어두운 그림자를 밝고 환하게 바꿀 발상의 전환은 무엇일까.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자화상인가.
즐겁고 신나고 아름답게... 그 행복비타민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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