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담배이야기... 두 번째 - 여성 흡연

토끼나그네 2005. 2. 1. 11:08

기왕에 담배에 대한 담론을 쓰다 보니 여성의 흡연도 우리사회에서는 상당한 화젯거리다.


아직까지 담배의 예의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대표급에 해당되는 기호품이다. 예를 들자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에 대하여, 젊은이는 연장자에 대하여,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뭐 그런 거다. 시골에 가면 나이 많은 조카가 나이 작은 삼촌 앞에서, 후배가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정중한 양해를 구하곤 한다.

모르긴 해도 여성도 이와 비슷할 텐데 같은 여성이라도 담배를 피움이 안 피우는 상대에게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을 거라 봐진다.


또한 여성의 흡연은 남성에 비하여 좀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사회의 도덕적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모체 건강론”에 중심하는 진실 된 측면도 없지 않다.

물론 담배의 해악은 더 말할 나이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담배에는 4천여 종의 화학물질과 60여종의 발암물질이 있으며, 폐암을 비롯한 각종 암과 그 밖의 질병의 원인이 된다. 흡연자의 암 발생률은 비흡연자보다 3.6∼6.5배나 높다. 담배의 니코틴은 마약을 분류하는 기준인 ‘중독성’, ‘의존성’을 매우 강하게 가지고 있음에도 약물로서 분류되어 있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담배는 마약으로 구분된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그 폐해가 더욱 심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흡연이 지닌 ‘여성저항’의 코드로 인식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기호품을 즐기고 소비하는 것은 사실 ‘공간을 확보’하는 문제와 연관되며, ‘공간’을 얼마나 지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사실 권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워 물거나 남성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여전히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만큼 여성의 흡연은 자유롭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우리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여성들은 딸로서, 여동생으로서, 애인으로서, 부인으로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감추어야만 했다. 그래서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찾아낸 공간은 어두운 카페이거나, 여자화장실이거나 베란다 등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거나 ‘여성 전용’ 공간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여성의 흡연은 금기시되고 억압당해왔고 그렇기에 가부장제의 맞서는 저항의 코드가 되어왔다. 조르주 상드 등 19세기의 유명한 페미니스트는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움으로써 가부장제적 금기를 조롱했고 서구에서 여성해방 물결이 일어나고 여성의 선거권이 확보되면서 담배 소비는 치솟았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여성 흡연율도 증가한다. 이처럼 여성의 흡연은 ‘성차별 기제’와 거기에 저항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면적으로만 다루어질 수 없다.


게다가 담배회사의 판매 전략이 여성흡연을 조장한 면도 많은 것 같다.

여성 흡연율이 증가한 것은 끊임없이 더 넓은 소비시장을 개척하려 하는 담배회사의 주도면밀한 판매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하고 많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게 되어 차차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게 되자, 담배회사들은 이것을 비흡연자였던 여성들을 흡연자로 만드는 절호의 찬스로 여겼다. 197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을 때 담배회사는 이러한 물결에 최대한 편승해 그것을 여성 흡연자를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최대한 활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계 최대의 다국적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사의 ‘버지니아 슬림’ 담배라고 할 것이다. 버지니아 슬림은 ‘지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섹시한’ 여성 커리어 우먼의 심리와 이미지를 반영하고 설득하는 데 크게 성공했다. 필립모리스사가 여성용 담배로 최초로 개발한 버지니아 슬림의 첫 광고 문구는 바로 “You've Come Long Way, Baby(참으로 먼 길을 걸어오셨군요. 그대여)”였다고 한다.


이후 버지니아 슬림 광고는 ‘It's a Women's Things!’, ‘Find You Voice’ 등 그때 그 때 상황에 걸 맞는 여성해방 메시지를 활용해왔다. 또한 필립모리스사를 비롯한 많은 담배회사들이 여러 여성단체에 기금을 지원하여 담배회사들이 여성과 매우 가까운 존재임을 환기시켜왔다.


오랜 기간 동안 여성들은 남성의 담배 심부름을 해야 했고 지저분한 재떨이를 치워주고, 또 남성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를 들이마셔야 했다. 사실 여성이 담배를 피우게 되고 담배가 주는 위안을 즐기게 된 것도 ‘남성중심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깊이 연관돼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동료, 남편, 시댁 식구 사이에서 부대끼다 담배에 의존하게 됐다고 말한다면 변명일까 위안일까.


하여간 담배는 끊어야 할 대상이지 여성흡연만 구분지어 이런저런 평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여자 친구 중에도 담배를 지독히도 빨아대는 애연가가 몇 있다. 모두 직업이 음악을 하는데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게 로맨틱하게 보인다거나 애교스럽게 보이려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혹 아니면 남성사회에 대한 발랄한 저항으로만 보이려는 건 또 아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