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담배이야기... 첫 번째

토끼나그네 2005. 1. 30. 22:00

오래전부터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내가 정말 짜증스럽다. 그래도 해마다 년 초가 되면 한 달 정도는 시도해 보기도 한다. 벌써 몇 년째 반복하고 있지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숨어서 피우기 시작했다. 시골의 그즈음에는 용돈이 요즘처럼 딱 정해 놓고 타서 쓰던 때가 아니므로 담배 살 여유는 없었지만 집엔 항시 일꾼이 피울 담배를 상당히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그걸 살짝 살짝 피웠던 게 시초다.

아마 그때는 호기심에 객기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제대로 피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인데 어머니가 아시고 좀 고급담배를 사다주시면서 시작되었다. 역시 일꾼용 저급 담배를 몰래 가져다 피우는걸 보시고는 저급 담배는 좀 그러니 기왕에 끊지 못하겠으면 고급 담배를 사다 놓을 테니 그걸 피우되 아버지께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서 피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때부터 아예 애연가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담배를 특별히 누구한테 배우고, 몰려다니고 하면서 피우지 않고 순전히 혼자 피웠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가서야 주로 친구 주홍이네 골방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그때 그 친구도 나 때문에 담배를 배워 피우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진옥이란 친구가 배워서 피웠다.

그래서 나는 독학으로 배워 수제자 2명을 키웠는데 주홍이는 결혼 무렵에 끊고 지금까지 피우지 않는 끈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종종 만나면 주홍이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오래 잇지 못해 죄송하다고...


대학시절 군대에 가기 전까지 지금은 수원에서 고등학교 교편을 잡고 있는 상희란 친구와 같은 방을 썼는데 돈도 담배도 떨어지면 1시간이란 시간을 정해서 꽁초를 주우러 다니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연애시절엔 지금의 아내가 내 담배피우는 모습이 아주 근사하다고 나의 끽연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을 하고 폐백 때 시가(媤家) 어른들이 준 절값을 신혼여행을 출발하면서 아주 고급 라이터를 사 주기도 했다. 기억컨대 그 당시로는 제법 큰돈인 몇 만원 준 것 같으니 내 담배 피우는 모습도 어지간히 괜찮았는가 본다.


그러다가 결혼한 이듬해, 그러니까 큰아이가 태어나서 곧 담배를 끊었다. 물론 술도 끊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부터 술,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을 하고 남아있던 담배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첫 번째 이유는 신앙심의 발로였다. 교회를 다니려면 제대로 다녀서 믿음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나이에 교회에서 청년부니 대학부의 지도교사를 맡아 성경공부도 지도하고 할 때이니 모범도 보여야 할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위궤양이 있어서 담배가 천적이라는 의사의 진단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하루아침에 이렇게 담배를 끊을 만큼 독한데 가 있는 사람이냐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담배와 술을 입에 다시 댄 것은 연구소장으로 가면서였다. 바로 불혹의 나이에 제법 큰 회사의 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중역들과 어울리면서 인사치례로 받아든 술잔과 그 술잔의 분위기에 따라 손에 잡은 담배가 일취월장하여 지금에 왔다.

그때 여러 사람들이 “그것도 안하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으면 답은 간단명료하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재미로 산다”였다. 그랬었는데 지금은 하루 한 갑 반 이상을 태워내는 애연가로 변해 있다.


그런데 아마도 담배를 피우는 대부분의 애연가들이 느끼는 공통점은 이런 것일 것이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짜증나고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때 담배 한모금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 이럴 때 담배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면서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 준다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