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 늙어서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어

토끼나그네 2004. 4. 15. 00:52


나 늙어서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어

앞마당에는 잔디를 심고 
덩굴나무로 쉼터도 만듭시다
조그만 옆마당엔 감나무를 심고
또 내가 늘 자랑하는 유자나무도 심자고...
그리고 윗마당은 잘 갈아엎어 밭을 만들고
아침 저녁으로 싱싱한 채소 뽑아다가
입맛에 딱 맞는 겉절이를 무치자고
그 겉절이는 내가 무쳐볼께
참, 앞뜰 한쪽엔 연못도 파서 붕어도 키우면 어떨까...

봄엔
우리 손잡고 서상으로 놀러갑시다
거기엔 제주도에서 봤던 노오란 유채꽃이 만발하거든
그길로 노량으로 벚꽃구경도 나서야지
해마다 오며 가며 보던 벚꽃
이젠 흠뻑 취해 봅시다
아마 전등사나 화계사 벚꽃보다 훨씬
정감이 있을 거요
왜냐고
남해가 이젠 당신 고향이 되었으니까  

여름엔
내가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던
상주나 송정으로 해수욕 갑시다
남해로 시집와서
한번밖에 가보지 못한 상주
이젠 사철로 모셔 가리다
그길로 미조로 가서 평생 맛보지 못한
갈치회로 멸치회로 대접하리니 후한 점수 줄라오
미리 귀뜀하는데
식은 보리밥에 비벼 먹으면
아마 깜빡 죽을 것이오

가을엔
금산에 한번 가봅시다
시아버지가 구경시켜 줬다며 좋아하던 당신 모습이 떠오르네
지금은 시멘트 바른게 많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금산이라오
정말 용모 풍취가 장난이 아닌
말 그대로 비단으로 산을 둘렀다는...
단풍도 정말 괜찮다오.
그러면 금강산 구경 간 셈 치기로 할까...
참, 내친김에 망운산에도 가봅시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회때 등산했는데 짱입디다
아, 그러고 보니
처녀 때 당신 취미가 등산이었다며
이제부터 우리 그 취미 살립시다

겨울엔
집을 지을 땐 페치카를 만들자고 했었지
그 페치카에서 고구마 구워서
난 한개만 먹을 테니 당신 실컷 먹으세요
많이 먹는다고 흉보지 않을 테니...
저녁엔
먹거리 좀 싸가지고 철이네 집에 가서 밤새우며 이바구 합시다
아마 철이네도 좋아할 거요
그리고 
별로 춥지 않은 겨울바다 구경 갑시다
난 당신의 고운 눈 속에 들어가 세상을 볼 작정이오
그리고 당신의 넓은 가슴에도 들어가 지난일을 되새겨 볼 생각이오

십여 년 전, 쉰다섯이면
도시를 떠나자고 했었지
미안하게도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네 그려
아무래도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당신이 그랬던가, 웬만한 조선땅 다 다녀봐도
남해가 좋더라던 말...
아마도 그건 내가 좋다는 뜻이겠지
당신은 여유롭게 뜨게질을 하세요
손주들 따뜻하게 입혀야지
난 그림을 그릴라오, 당신 뜨게질 하는 모습을 담아볼까 하는데...
아니면 그토록 구박 받으며 삿던 섹스폰을 불테니
노래는 당신이 하세요, 당신 한노래 하잖아요
시골서도 인터넷이 잘 된다지
그러면 마르고 닳도록 남해토끼와도 살아야지
그리고 책도 실컨 읽고
"나 늙어 이렇게 살고있어"로 책도 내 볼 생각이오.
2004. 1. 14

아주 오랬만에 마누라 생각하며 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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