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방궁 청산과 색스폰 소동

토끼나그네 2005. 5. 17. 15:15

이사도 잘 마무리 되고,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나홀로 아방궁 생활도 막을 내리므로 새집에 터를 잘 잡았다.


사람이 살면서 正道로 살아야지 잔머리나 굴리면서 일신의 영화를 누리려고 한다면 필경은 변고를 만나게 된다.

살던 집이 한 보름정도는 여유가 있어서 이사를 보내놓고 나 혼자서 휴식도 좀 취할 겸 빈집에서 야영을 했는데...


처음의 생각은 열흘정도 책도 실컷 읽고 가족과 떨어져 자유를 구가 할 생각으로 컴퓨터와 책장 하나, 책상과 침구 그리고 열흘분의 옷들을 남겨놓고 저녁이면 마치 여름 해변으로 휴가 나온 기분을 가져볼 생각이었다.


아내가 하는 말이

“어린애들처럼 뭐 별로 쉴 틈도 없을 텐데... 유별 떨지 마시라”고 비아냥거림이 거세었지만 이사에 도움을 주지 못한 아내의 위상이 내게 먹히지 않아 내 맘대로 해버렸다.


그랬더니 아내는

“당신 맘대로 아방궁으로 꾸며 뒹구세요”하고 놀려댄다.

아방궁,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세웠다는 그 궁전중의 궁전... 아방궁...


내가 생각해도

“별반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유별을 떠는 내가 몇 살짜리 생각인지” 하고 묻고 싶기도 하다.

그 일주일간은 그런대로 자유스럽게 책도 실컷 읽고... 채팅도 좀 했다.


품격 있는 네티즌과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밤늦게까지... 졸리움도 없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지금도 종종 주변의 일상사를 메신저로 나누는 기쁨을 밤늦게까지 누리고 있다.


생각보다 빨리 일주일 만에 아방궁을 정리하고 본향의 집으로 돌아가려니... 옆집에서 작은 화물차를 빌려 며칠간 소지했던 물건들 옮기는데 아무도 거들어 주지 않아 혼자서 꿍꿍대고 애를 썼다.


저녁에 아내가 이걸 보고는 이렇게 놀린다.

“거보소... 별로 유익하지도 않은 일에 잔머리 굴리니까... 힘들지...”

“괜히 그랬나 싶지... 쌤통이다... 히히히...”

맞는 말이다. 이사할 때 온통 한꺼번에 했으면 좋았을걸...


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별 명예도 없는 ‘이사대책위원장’이 계속 유효하면서 이삿짐 정리도 대부분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 자비한 품격의 신랑은 군소리 없이 마무리 잘 했더니 우리 집 국민은 찬양의 노래로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

점심을 먹은 후 예고도 없이 백화점에 가잔다.

“왜... 뭣 하러...”

이번 이사에 당신의 노고가 지대하므로 위로의 선물을 하겠다나... 아이... 고마워라...


일단은 피에르가르댕 와이셔츠 가게로 가서 지난번 내가 샀던 것 중 하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면서... 선물로 추가 한 개... 그래서 십만 팔천 원짜리 와이셔츠 얻어 입고는... 에스콰이어 구두점으로 가서 십오만 원짜리 브라운구두 하나 얻어 신고...


룰루랄라... 싱글벙글...

호사다마란 말을 여기에 갔다 붙여도 되는지...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고약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내 손폰이 진동을 한다. 내 손폰은 고정요금으로 일정한 통화량만큼 무제한 사용하는걸 쓰는데 항시 통화량이 남아 주말이면 아내가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좀 야리꾸리한 전화는 주말에 걸지 말라고 상대방한테 단단히 주지 시켜야 한다. 사실은 이게 귀찮아서 그런 일을 엄두도 못 낸다...


아내 손에서 손폰을 받아 창을 보니 “OOO섹스폰”이라고 찍혀 있길래,

“여보세요...”

손폰에서 여자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나오니 아내가 옆으로 바짝 댕겨 앉으면서 귀를 쫑긋하는 모습이다.

“네... 저 OOO데요, 월요일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금요일 오후 2시에 했으면 좋겠는데... 사장님 시간이 어떠세요”

“아... 그래요 저는 시간에 큰 문제없으니 금요일날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전화를 끊고 나니


아내가 일초의 지체도 없이 말을 건다.

“여자 목소리던데... 누구예요...”

“응... 거래처...”

“무슨 일로... 금요일 날 뭐 약속하는 것 같던데...”

“그래, 금요일 날 미팅하려고”

“미팅을... 여자하고... 요즘 업무차 만날 사람이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사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회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대체로 소상하게 이야기 해 준다. 신랑이 하는 일을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과 또 그렇게 이야기할 때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리됐어...”

“빨리 말해요... 무슨 일인지...”

그러면서 내 손폰을 내손에서 가져가 열어보니 창에 ‘OOO섹스폰’이라고 최근 통화목록에 나와 있다.

아내 얼굴이 새하얗게 되면서 중얼거린다.

“섹스... 섹스... 섹스폰........”

“말 안 해요...”

“그거 말할 수 없는데... 아...참... 곤란하게스리”

 

이러니 아내는 더 안달이다. 이 상태에서 더 우물거리는 게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해 진실을 고백하기로 맘먹고는

“응... 실은 말이야... 내가 얼마 전부터 색스폰을 배우고 있는데...”

“뭐요... 색스폰을요... 그래서요...”

“그런데 월요일이 교습일인데... 그날 무슨 곤란한 일이 있나봐... 그래서 금요일 날 하자고 그러네...”

 

“당신 제정신 이예요... 이제 사업을 다시 시작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낼 모래 제품 출시한다고 안달이더만... 그 색스폰 배우고 활량노릇 할 시간이 있어요...”

 

여기까지가 전철 안에서의 상황... 1라운드다.


드디어 아내의 가게... 그리고 방으로 끌려들어가서는...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시골 아버님께도 말씀드려야 겠어요...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폭로해야 겠어요...”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그런다고 말이예요”

이럴 땐 변명보단 죽었소하고 눈감고 있는게 최고의 상책이다.


“무슨 말을 해봐요... 그리고 한 달에 얼마예요...”

“응 십만 원...”

“이봐요.... 그럼 색스폰 십만 원... 골프 이십만 원... 헬스클럽 십만 원...”

“돈도 돈이지만 당신... 시간이 남아돌아요...”

“어찌 사무실에서 나오는 시간하고 뭐가 아다리가 잘 맞지 않더니만... 거기서 두어 시간 보냈군...”


아내는 찍힌 전화번호로 그 OOO선생님한테 전화를 직접 걸어서 색스폰을 배우려고 하는데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한 달에 얼마냐고 확인까지 하고 끊는다.


“한 달에 십오 만원이라는데 왜 거짓말해요... 이사람 안하던 행동을 하네...”

그러면서 왜 ‘색스폰’을 ‘섹스폰’이라고 손폰에 등록을 해서 헷갈리게 하느냐고 잔소리를 덧붙인다.

“그리고 색스폰 내게 보관시키고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운동은 하던 거니 계속 잘 하고요”


일단 상황종료...


노고를 치하 받고 선물까지 받아서 기분이 중천 하다가 추락한 셈이다. 이거 참 야단이다. 이제 한참 맛이 들어 재밌기가 짝이 없는데... 어떻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월요일 퇴근을 해서 꼬불쳐 놨던 돈 이백만 원을 어디서 생겼다며 줬더니...

돈에 약한 여자... 우리집 그 여자가 돈 받아 들고는 심경의 변화를 갑자기 일으켜서 하는 말이...


“근 십 년 전에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샀던 건데... 그냥 열심히 잘 하소...”

“그리고 내년 이맘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나 멋떨어지게 연주해서 날 즐겁게 해 줘요”

“사실은 돈 안줬어도 그렇게 하라고 하려는 참이었는데... 공돈만 생겼네...”

 

뭐이라야... 공돈... 가만이만 있어도 될걸 뇌물로 해결하려다 돈만 날렸잖아...

돈만 뺐긴 셈이다... 좀 더 버터 볼걸...

아쉽기는 하지만 아내에게 갔으니... 대국적으로는 손해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면서 한편으로 여자를 이기는 남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암... 그러고 말고... 진짜 폼 나게 연주할게...”


난 오늘도 색스폰 열심히 불어서 아내를 기쁘게 해 주려고 연습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건강으로 기둥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운동도 부지런히 할 것이다.


여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