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지..전화 때문에 죄송합니다...

토끼나그네 2004. 5. 20. 11:12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의 전화가 있었다.

아내의 휴대폰으로 온 것이다. 대뜸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하시는 모양이다. 전화 온 적이 없다고 말씀을 드리건만 무조건 받지 않는다고 역정이신 모양이다. 이것 땜에 역정 내실 일이 아닌데 무슨 일이 났나 보다하고 나는 귀를 쫑긋하고 긴장을 한다. 내용인즉 이런 거다.


칠팔 년 전에 전화국에서 고향집에 있는 전화의 요금을 객지에서 자녀들이 낼 수 있도록 원격지 납부 제도가 생기면서 난 제일 먼저 신청을 해서 지금껏 오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가 통화를 하면 워낙 통화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옆에 계시는 아버지는 통화료가 걱정이 되는지 자꾸 빨리 끊으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옆에서도 들리니 아들입장에서는 여간 불편스럽지 않다.


그걸 신청해 놓고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아버지, 여기서 통화료 내도록 해 놨으니 전화요금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마음껏 아들들한테나 딸한테 전화 하세요”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웃으시며,

“전화요금 때문에 네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구나, 절약하자고 하는 건데...”

하시며 고맙다고 하신다. 그랬지만 종종 전화요금이 얼마나 나왔냐고 물으시곤 “절약을 해서 다음 달엔 적게 나오게 해야지” 하곤 하신다.


어떤 때는 어머니와 아내가 두어 시간이나 통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느닷없어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이쪽에서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가지 받지를 않는다. 한참을 있으니 어머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하시는 말씀이 “네 아버지가 전화 오래한다고 전화선을 뽑아버려서 끊어 졌다”고 하신다.


그러다 몇 년 전에는 한번 요금이 정해지면 통화량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부과된다는 정액제가 생기니까, 이번에는 아내가 제일먼저 시골도, 이쪽도 해서 양쪽 모두를 신청해 놓고는 아버님 전화요금 걱정은 완벽하게 해결되었다고 웃는다.

그래도 가끔은 정액제하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셨는지 통화시간이 너무 길다고 어머니께 한 번씩 핀잔을 주신다고 하신다.


이렇게 그렇게 해서 지금껏 잘 지내 왔는데 며칠 전에 전화요금이 두 달씩이나 미납이 되었다는 전화국의 통지를 받았다고 전화를 해 오셨다.  지로납부로 되어있는걸 처음으로 잊어먹고 두 달을 넘긴 것이다.

당장 아버지 말씀은 “옛날 하던 대로 여기서 내가 낼까” 하시는 것이다. 이건 나에게 대단한 압력성 말씀이시다.


난 아내에게 평생을 교육공무원으로 칼같이 사시던 분이데 아마 이런 재촉 전화 같은걸 받으니 언짢았을 거라고... 빨리 납부하자고 해놓고는 또 잊어먹고 십여 일이 지나고 오늘이 된 것이다.

아뿔싸, 오늘부터 통화정지가 되었단다. 받는 거는 되는데 발신을 할 수 없다고.

아버지는 이웃에 가서 전화를 해도 될 것을, 새벽에 읍내까지 가셔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셨는데, 집 전화는 받지 않지, 내 휴대폰으로 해도 받지를 않지, 아내 휴대폰으로 해도 받지를 않지 하니 짜증이 날만도 된 상황이다.

보니까 집 전화는 아버지가 번호를 잘못 눌렀고, 내 휴대폰은 진동으로 되어있고, 아내 휴대폰은 몇 번 만에 받은 셈이었다.


아내는 지난 월요일 납부를 했는데, 이것이 컴퓨터로 이관되는 게 아니고 우편으로 이관이 되니 아마도 오늘쯤 도달할 것 같다면서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 드려도, 아버지는 믿지 않고 돈이 없어서 못낸 줄 아시고 역정 반, 걱정 반으로 말씀하신다.

우리 집은 일종의 비상사태인 것이다.


전화국에 전화를 걸어도 업무시간 전이라는 응답만 반복되고 연결은 되지 않고, 이렇게 기다리다 9시가 되어서 고향 전화국과 연결이 되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서 통화정지를 해소시키고, 통장 자동이체 신청을 하고 해서 상황 종료가 되었다. 처음 제도가 생길 땐 아무 큰 생각 없이 신청만 하니까 지로납부로 된 것이 지금까지 예사로 생각하고 그대로 두었던 거였다.

그렇지만 다른 공과금은, 아니 여기 집의 전화요금도 모두 자동이체를 하면서 유독 그것만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아내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우리도 궁금하다면서 웃고 말았다.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서 상황 종료 설명을 드리고, 자동이체 신청도 말씀을 드리니, “괜히 나 때문에 아침에 부산을 떨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며 웃으신다.

이런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신 어머니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래도 “영감이 너무 부산떨었소” 하고 한마디 하셨을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 미안합니다.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