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수원 나그네의 전설

토끼나그네 2004. 4. 9. 10:21

 

조선 정조때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지극한 효심을 지녔던 정조대왕은 수시로 사도세자가 묻힌 능으로 행차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미복차림으로 아무도 모르게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안녕리(지금의 수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여기가 실제 수원이었다. 지금의 수원은 정조17년 1793년에 화성으로 이름 붙여지면서 시작되었다. 화성이 수원으로 바뀐 것은 고종 23년 1895년이었다)로 암행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마침 밭에서 일을 하던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에 대해 그 농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농부에게 능을 가리키며 저곳이 어떤 곳인가를 물은즉, 농부는 저곳은 뒤주대왕의 애기능이라고 대답하였다. 정치적 희생양으로 뒤주 속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왕이 되었을 사도세자의 능이라 뒤주대왕이라 했고, 애기능이라 한 건 임금님들의 산소를 능이라 하지만 왕이 못되셨으니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하였다.


정조는 내심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대신들의 반대로 사도세자를 추존하지 못하고 있던 차, 한 농부의 입에서 뒤주대왕 애기능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그 농부에 대하여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농부에게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 물어보았다. 그 농부는 책도 많이 읽고 과거도 여러 번 본 실력 있는 선비였으나, 번번이 낙방한 불운한 선비였다. 다시 한 번 과거를 봐 보라는 정조의 말에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또 떨어질 것이 뻔 하다 하면서 관심이 없었다.


정조는 그 농부의 마음을 겨우 돌려 다시 한 번 과거를 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정조는 급히 환궁하여 과거시험을 보게 하는 영을 내렸다.


과거시험을 보러간 선비가 과거시제를 받아보니 융능 근처에서 있었던 자신과 어느 선비의 대화를 적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만 붙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왕을 배알하던 중 알고 보니 그 어느 선비가 바로 임금님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