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수님을 만나다.
지난 일요일인 3월27일 , 그러니까 주일아침 여느 때 같으면 침대에서 베개 2개로 목을 지탱하고 점심 무렵까지 TV를 보다가 책을 보기도 하면서 뭉개는데 이날은 보통 평일과 같이 일찍 일어나 정리를 하고는 외출준비를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전날 저녁에도 아내와 의논을 했지만 뾰족한 결론은 없다. 그 의논이란 게 교회를 갈지 성당을 갈지... 하고 벌써 몇 년째 나누는 이야기다. 참으로 웃기는 게 어느 쪽이든 출석도 하지 않으면서 의논만 하는 것이다.
딸애는 지가 어릴 때부터 다니는 교회가 있으니 당연히 그곳으로 갔다. 아들은 애비를 닮아서 아직까지 교회 휴가 중이다.
어째든 이날은 자연스럽게 성당으로 가서 미사에 잘 참석하고 왔다. 마침 부활절 주일이라 의미도 많았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성당의 미사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걱정도 되면서 다음 주엔 그냥 하던 대로 교회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오랜 교회생활의 이력은 성당의 분위기와는 많이 대조된다. 아내도 아주 어릴 때부터의 교회생활이 몸에 많이 젖어 있을 것이다.
특히 처가는 수년전 소천 하셨지만 기도의 권사로 널리 알려진 장모님과 장로인 처남도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군대 생활 이후 쭉 교회생활, 뿐만이 아니고 한때는 신학을 하려고 다부진 결심도 했었으니 오죽하랴.
나의 교회생활 이야기는 이쯤 해 두는 게 좋을 성 싶다. 왜냐하면 지금은 신앙생활을 내팽개쳐버린, 세속의 쾌락에 한껏 젖어있는 주제에 전에 예수 믿었었다는 이야기가 격에 맞지 않으니 말이다. 다음에 내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회복했을 때 그때의 열정을 기록할까 한다.
그렇다. 매사가 얻기는 어려워도 버리기는 쉽다던가. 부(富)도 어렵게 각고의 고생을 하며 이루어도 탕진은 눈 깜짝할 사이라고...
내가 그토록 열정이던 신앙에서 세상의 즐거움에 매몰된 것은 실로 눈 깜짝할 새였다. 내가 젊은 불혹의 마흔 살에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그룹의 회장이나 계열사의 사장들과 어울리면서 순식간에 술담배에 찌들게 되어버렸다.
그때까지 아내도 교회에서 여전도회 회장도 맡는 등 적극적이었는데 신랑이 좋아서 그랬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내가 교회를 땡땡이치니 함께 합작 땡땡이가 오륙년 이어지면서 그게 몸에 베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맙게도 지네들이 다니던 교회에 열심히 다녀 주었고 외국으로 선교여행도 다녀올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다 교회를 다시 다니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 아내는 성당으로 나가자는 이야기를 하더니 혼자서 교리반에 등록을 하곤 내게 함께 다니자고 해서 나도 교리반에 다녔다. 이게 삼 년 전쯤의 일이다.
성당을 다니자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랑이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니 그것을 허용하는 곳이 성당이라는 것이다. 아이쿠, 얼마나 신랑을 위하는 일인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교회생활을 많이 했으므로, 다시 말해서 성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지식적으로 아는 편에 속하니 우릴 그냥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다닐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사실 교회라는 곳은 처음 새신자가 오면 반갑다는 애정과 어울리려는 애정이 곱빼기로 발휘되어 사람을 들들 볶는다. 좌우지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런데 성당은 무관심일 만큼 아는 체 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 면에서 초심자는 소외되거나 신앙생활의 성장이 더디거나 기복을 겪을 수 있을 것 가기도 하다.
혹여 이런 이유로 성당에는 후견인 역할을 하는 대부나 대모의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누가 맺어 주는지 또는 나처럼 누구의 안내도 없이 스스로 출석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째든 아내는 교리를 받는 동안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다가 요즈음 내가 주장하는 바람에 성당이다 교회다 하고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 성당을 다니는 동안 느낀 게 몇 가지가 있다.
뭔고 하니... 교회를 다니는 동안 나의 판단과 지식은 차제하고 신교의 교인 특히 교역자는 구교에 대하여 혹평을 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미신이라고까지 한다. 그 근거를 몇 가지 나열하면서 말이다.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를 열거해 보자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숭배 또는 중보기도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고해성사
사제들의 독신 생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정죄(淨罪)를 위하여 머문다는 연옥
그리고 중세 교회의 타락...
이 외에도 많은 대목이 있지만 교리와 여러 가톨릭 책을 통해서 배우고 알게 된 것은 많은 부분이 오해와 잘못 알려진 데에는 온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의 입장이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한 변명은 결코 아니다. 특히 중세 가톨릭 성직자의 타락은 정치와 종교가 협력하고 상부상조한 시대적인 부패의 단면이기도 하면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정치현상의 단면이 종교를 통해서 보여준 엄숙한 교훈이다.
오늘날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불교에서도 타락하고 부패한 장면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이것으로 그 종교 전체를 평하는 것은 옳지 않을 성 싶다.
이야기가 너무 엄숙한곳으로 흐른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주는 아내의 성당이냐 딸내미의 교회냐를 놓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아내가 신랑을 편들어 준다면서 술담배 걱정 없는 성당이 지금은 구실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은, 담배는 말끔히 끊었으니 걱정이 없고 술은 살금살금 밤에만 숨어서 마시면 될 터이니...
하지만 어느 곳이든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게 내게는 엄청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다가오는 주일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