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설을 맞으며
해마다 맞는 설이다. 어느 누가 즐겁지 않을까. 하지만 근년에 와서는 설이 되면 마음이 무겁다. 특히 금년에는 그 마음이 한층 더하다. 6년 전까진 해마다 설과 추석이면 고향을 찾아 귀향의 설래임으로 식구들과 함께 그 먼 거리도 기쁨으로 출발하곤 했었다.
여기 인천서 고향 남해까지 가는데 평시에는 5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명절 귀향길은 보동 10시간 정도다. 한번은 25시간이나 간적이 있다. 아니 30시간 정도 된다. 집에서 아침 10시에 출발했는데 안산쯤 가니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3시간 정도 찔끔찔끔 가다가 다시 돌아와 버렸다. 5시간 정도를 허비하였다. 그리고 저녁 10시에 다시 출발하여 시골집에 도착하니 다음날 저녁 11시였다. 휴게소에서 소비한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으니 길에서 그리고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이 24시간이니 이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대진고속도로가 뚫린 근년에 와서는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이러니 다섯 자녀를 둔 부모 마음이야 오죽 하겠는가. 다 도착하기까지 제대로 눕지도 못하시고 안절부절 이시다. 시시각각 어디쯤이라고 상황보고도 잘 해야 한다. 시골 갈 때만 그런가.
명절을 쇠고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 어떤 놈은 명절 오전에 바로 가는 놈부터 나같이 며칠을 더 머물다 출발하는 놈까지 가지각색이다.
이러니 6년 전 아버지가 우리 집(큰아들)에서 명절을 지내자고 하신다. 설이고 추석이고 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되겠다고 하신다. 이거 야단이다 싶어 내가 설은 그렇게 하더라도 추석은 시골서 지내자고 말씀 드리니 이유를 물으신다.
문중의 여러 집이 아직 시골에 있고 많은 시골 친구들도 명절 귀향이 아니면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큰아들로서 가문의 외교를 위해 그렇게 하자고 하니 쾌히 승낙을 하셔서 지금까지 6년을 그렇게 지냈지만 내심 고향을 못가는 맘은 아쉽기만 하다.
다행이 추석이라도 고향에 가고 평시에도 두어 달에 한번 정도로 시골을 다녀오니 그나마 위안이다. 그러나 명절 때 여러 객지에 나갔던 친척이며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은 귀향길의 고생은 별것 아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고 제사며 추석까지 온전히 우리 집에서 하자고 하시니 마음이 영 쓸쓸하다. 시골의 조그마한 전답을 돌보시는 일로 소일하시던 어른이 힘이 많이 부치는 모양이다. 적당한 기회에 여기 와서 사시겠다고 하시니 평소 내가 원하던 것이긴 하지만 늙어만 가시는 부모님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골만 가면 차 트렁크가 부족하리만큼 채워 주시고, 시동 걸어 출발하려고 하면 어머니는 잠깐만 하면서 또 뭘 줄 것이 없나 하고 창고며 부엌으로 달려가신다. 처음에는 그냥두시라고 승강이도 많이 했다. 뿌리치고 오면 아버지는 내가 뿌리치고 갔다고 어머니가 우셨다고 나무라신다. 그 이야길 듣고 그 다음부터는 주시는 데로 아주 기쁜 마음으로 다 담아온다.
우리 어머니 그 맛에 재미 붙어 큰애는 50되어서 철들었단다. 아이고,……. 이런 게 어디 우리 어머니뿐이겠는가……. 자식 둔 부모마음은 한 치 틀림없이 다들 같으리라.
우리 부모님 이곳에 오시면 뭣에 재미 붙여 쉬실까……. 이 이야길 시골 사는 친구 몇 이가 우리 아버지한테서 듣고 그냥 고향서 사시게 하라고 전화로 재촉이다. 낼 모래 여든을 앞둔 노인네를 도심 한복판에서 어떻게 사시게 하려냐고 핀잔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렇기도 한데……. 정답이 없는 문제라…….
지금 이시간, 아버지 어머는 아들네 집으로 설쇠러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계신다. 9시 반 버스를 타셨으니 오후 세시쯤이면 도착 하실 것이다.
본래 아버지는 오시지 못할 것 같다고 아내한테 말씀하셨단다. 아내와 딸내미한테 보약으로 먹이려고 염소를 키웠는데 그 염소가 곧 새끼를 놓을 것 같아서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신다.
사실 아버지 어머니의 며느리 특히 큰며느리인 아내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시다. 그런데 어머니만 보내기가 어쩐지 편지 않으신지 그 염소는 이웃에 단단히 부탁을 하고 오신단다. 그리고 대보름을 지나고 염소보약을 만들어 보내신단다.
오늘 고향서의 마지막 설 차례를 지내실 때 많은 감상을 가지셨으리라. 당신이 때어난 곳,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명절의 맥이 끊긴다고 생각하니 많이 서운하셨으리라.
늘 그러셨다. 당신이 마지막이라고, 너희들은 도회지에서 살터이니 조상이 묻힌 고향지킴은 당신이 마지막이라고....
아마도 이런 말씀을 듣다보니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가문이 숨 쉬는 곳, 내가 태어난 곳으로, 그곳에서 흙 밟으며 살고 싶은 게 나의 소망이다.
이글을 쓰면서도 내 맘이 영 엉망이라 눈가가 적셔진다. 가슴이 뭉쳐온다. 뵌지가 두어달도 되지 않았지만 그새 또 늙으셨을까.
어려서, 젊어서 부모 속 썩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돌이켜 보니 이제야 부모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하나하나 가슴을 얽어낸다. 공자님의 말씀이 나이 오십이면 하늘의 명도 알 수 있다는 知天命의 나이 아닌가.
내가 知天命을 훌쩍 지나 耳順의 나이를 바라보면서 이제야 내가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진실로 깊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이걸 어쩌랴……. 이제라도 이런 생각을 깊이 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정말로 내가 이제야 철들었나…….
乙酉年 元旦